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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Jang Eun Sun Gallery
인사말

나는 자주 장은선씨에게 권면하였다. 지금 쯤은 자신의 화랑을 하나쯤 만들만한 때가 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그러나 장여사는 속이 든든한 사람이라 서뿔리 자기 일을 시작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본인 생각에 훌륭한 작가로 믿어지는 사람들의 작품을 주로 미국ㆍ일본 등지에 소개하고 그 작가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 실력을 과시하고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면서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술작품에 대한 그의 탁월한 식견과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놀라운 수완,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함과 성실함이 이제는 작가들 사이에 알려질 만큼 알려진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에 장여사가 그 복잡한 인사동 골목 안의 호젓한 곳에 누가 봐도 탐스럽고 아담한 화랑을 마련하고 십년의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계에 크나 적으나 공헌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한국의 미술계는 물론이고, 한국사회의 문화적 발전을 위해서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화가나 조각가가 자기 손으로 혼자서 때로는 고독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정성 어린 작품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사회 전체의 재산이기 때문에 장은선 갤러리와 같은 아름다운 화랑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랑하며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가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 세계적으로 저명한 발레리나인 마곳 폰테인이 어지간한 나이가 되어 미국 TV의 데이빗 프로스트 쇼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시간에 그 노련한 예술인이 던진 한마디 말이 수 십년이 지난 오늘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나의 오늘이 있는 것은 나만의 힘이 결코 아닙니다." 만일 영국 로열 발레컴퍼니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폰데인이 던진 이 한마디가 왜 의미 심장한것인가 하면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살기 때문에 시간과 정력의 낭비가 너무 많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천재화가 반 고흐의 비참한 삶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다. 그는 퍽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생전에 팔린 작품은 한장 뿐 이었다고 들었다. 그 값인들 제대로 받았겠는가. 우리는 또한 한국이 낳은 불운한 작가 이중섭에 관하여서도 들은 바가 많다. 만일 그를 아끼고 사랑해 주던 화랑이 단 하나만이라도 있었다면 이중섭은 영양실조로 폐병에 걸려 요절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곳 폰테인에게 영국 왕실 발레단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그 천재 발레리나는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한평생을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장은선 갤러리의 개관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장은선 여사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미루어 볼때 이 화랑을 통해 예술계에 우리가 바람직 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반드시 이루어 지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는 서양의 속담이 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이들을 어떤 모양으로든 돕고, 우리가 사는 땅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한 여성의 가슴 속 오랜 꿈이 이제서 열매를 맺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들이 이루워지는 그 길은 반드시 있다고 확신하면서 장은선 갤러리의 출범을 축하하는 바이다.

2005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김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