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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보展
- 작성일
- 200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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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1561
새로운 차원으로 변신하는 빛과 색의 고차 방정식 회화에 있어서 색채의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고 중요하다. 그것은 사물의 묘사적 서술의 관계에서부터 자율적으로 증식될 수 있는 색채 자체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변수를 갖는, 고차적 함수의 세계를 거기에 열어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화의 본질적 가치는 원래 색채가치와 더불어 존재한다는 말이 있으며 때때로,"회화는 색이다."라는 극언까지도 나오는 것이다.
사실 윤수보의 작업을 눈앞에 둘 때마다 필자는 그러한 극언을 실감하게 된다. 그의 작업만큼 색채가 맑고 현란한 작업은 드물기 때문이다.웬만큼 색채가 좋은 작업도 그의 작업 옆에 직접 비교된다면 그 감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이것은 프랑스 유학중에서도 증명한 사실이다. 마치 햇볕을 촉각적으로 눈에 와 닿게 하듯 일루전을 일으킨 채 회화 본래의 장식성을 새삼스럽게 온 몸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의 뒤편에는 언제나 빛과 색의 상호관계가 개입되어 있음을 깨닫게도 한다.
그가 처음 이러한 색채회화에 몰입하게 된 동기도 바로 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 광안리 바다에서 살며 체험하고 관찰했던 일출의 장면이 작업의 이미지 속에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게 된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일출에 있어서 생성되는 시각적 경험,"빛의 기묘한 산란에 이어 던져지는 시각적 충격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일으키며 그 체험을 붓으로 표현해 보려 했다"는 작가 자신의 언급은 곧바로 작업 자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그만큼 그의 작업은 색채의 설득력이 뛰어나며 그것은 색채와 더불어 빛을 느끼고, 꿈꾸며,상상하는 회화인 것이다.
근자에 들어와 그는 과거보다 훨씬 중화된 빛과 색의 이미지를 그리는데 그것은 직감적이고 저돌적인 및의 충격을 완화시켜 상대적으로 색채본래의 화려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보다 노련한 방법론을 통해 본태적인 회화의 방향을 선택하려는 의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특히 빛과 색채 이미지 사이에 항상 잠재하던 사물의 그림자가 새로운 교차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작업을 네오 큐비즘(첫 개인전의 서문에서)이라고 언급했던 필자의 관찰은 비교적 정확한 지적이었다 할 것이다. 사실 일부의 작업에서 엿볼 수 있는, 마치 물소에 굴절되는 빛의 이미지처럼 아른거리는 일루전의 새로운 개입은 그러한 사실을 잘 뒷바침해 주고 있으며 이것은 그의 회화가 새로운 차원으로 변신한 채 보다 고도의 방정식을 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한편에 말해 주고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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